‘알파걸’은 미국 하버드대학교 아동심리학 교수인 댄 킨들런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학업과 운동, 인간관계와 리더십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남성을 능가해 질주하는 여성’을 일컫는다. 즉 남자보다도 뛰어난 여자를 말한다.
얼마 전 회사 면접관으로 참석한 한 간부는 이런 말을 했다. “이거 원 남자를 뽑고 싶어도 면접에서 너무나 차이 나서 뽑을 수가 없어요. 여자 지원자들은 스펙도 좋은 데다 입을 열면 자기소개를 청산유수같이 쏟아내고, 남자 지원자들은 떨고 긴장하고 스펙도 별로 좋지 않으니…….”
매사 추진력 있고 똑소리 나는 알파걸들. 하지만 이들에게 최대 난관은 바로 육아다. 늘 자신감 있어 보이는 이들이 육아와 집안일을 척척 해내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은 오히려 평범한 엄마들보다 더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워킹맘이 아니라 전업 주부라도 마찬가지다. 육아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우울해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내면의 문제라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밑바탕에는 우울감, 불안감이 의외로 많다.
육아가 원래 힘든 일은 맞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즐겁고 편안하다며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알파걸이 조금 더 힘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크게 세 가지인 것 같다.
우선 알파걸은 집안일에 익숙하지 않다. 요즘 시대에 누군들 집안일에 익숙하겠냐마는 알파걸은 좀 심각하다. 서른이 다 되도록 라면을 제대로 못 끓이고 밥도 지어보지 못한 경우도 왕왕 보는데, 부모님이 ‘집안일 따위’를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말리는 분위기에서 자란 경우도 있다.
또 하나 육아를 힘들어하는 큰 이유는 모든 스케줄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자신을 돌보는 엄마를 배려하지 않는 매우 이기적인 존재다. 아무 때나 울어대며 참는 법이 없다. 졸려서 칭얼대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서 눕히고 한숨 돌릴까 하면 어느새 깨어나 도무지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아이와 있을 때 엄마는 전적으로 아이의 스케줄과 요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자신의 스케줄과 선호가 분명하며 자신에 맞추어 주변 환경을 조정하는 데 익숙한 알파걸에게는 특히 힘든 일이다.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면서 ‘나’는 사라진 것 같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세 번째로는 늘 주위와 비교하던 습관이 육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알파걸은 남과 자신을 비교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익수하기 때문에 아이도 ‘잘 자라는지’가 아니라 ‘잘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자신의 육아 성적을 무의식적으로 매기고 있다. 그래서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모이면 누가 먼저 목을 가누었는지, 뒤집기를 했는지 등을 은근히 경쟁하고 자기 아이가 늦는다 싶으면 다음 날 부리나케 소아과를 찾아간다.
어릴 때 발달이 빨랐다고 나중에 잘된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지나친 조기교육이 인지적, 정서적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보고는 너무나 많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가 리더가 되고 나중에 연봉도 더 많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이 부모와 좋은 관계를 통해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풀어갈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고 성숙해진 한 알파걸은 “애가 태어난 뒤로 많이 달라졌어요. 그전에는 지고는 못 살았는데 애가 있으니까 좀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고 희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엄마 자신일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에 대해서도 너그러움을 배우고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편해졌다는 엄마들도 많다. 그러니 알파걸에게 육아란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성장판이라고 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