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은(꼭 남자만은 아니겠지만)명함이 없어지면 인생이 사라지는 줄 안다. 잘나가던 대기업의 임원조차도 자리가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줄 안다.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쉽게 우울해진다.
우리는 성취 지향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성과만이 곧 선이다. 물론 잘하는 것이 뭐 나쁜 일이겠는가? 돈 잘 벌고, 빨리 승진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실적을 내고, 뭐 이게 나쁜 것인가? 당연히 좋은 실적을 내도록 노력해야 하고 1등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자신의 가치라고 믿게 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외적은 성취 이외에 자신이 진정 왜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모른다면 어떤 조건이 갖추어진다고 해도 결코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다.
나는 49가지 단점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대기업 이사로 승진했다. 남들보다 빠른 승진, 학벌, 집안, 외모 어느 것 하나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승진을 하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매주 사장단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너무 열심히 준비했다. 밤을 새워가며 자료를 만들고 수치 하나까지 전부 외웠다.
그런데 너무 잘하려는 욕심 때문이었을까? 발표를 시작하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발표를 하는 중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가서 더듬거리자 누군가 질문을 했다. 분명 밤새 외웠는데 머리가 텅 빈 느낌, 앞이 깜깜해지고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발표를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 순가 온갖 비난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다음 주부터 온갖 핑계를 대고 발표를 피해 다녔다. 점차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 불안으로 잠들 수가 없었다.
그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당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써오세요. 아주 사소한 것도 좋습니다.”
그는 일주일 내내 생각했지만 자신의 장점은 단 하나도 발견 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단점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49가지를 적어 온 것이다. 장점은 없고 단점만 49가지를 가진 사람. 그가 기분이 좋을 리도, 자신감이 있을 리도 없지 않은가?
그가 숙제를 내어놓으면 씩 웃었다.
“선생님, 제 문제가 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단점이라고 적어온 것 중에서 많은 것이 자신의 장점이었다.
‘저는 매사에 우유부단합니다.’
간단히 바꾸어주었다.
‘참 신중한 분이군요.’
물론 단점까지 전부 장점이라고 우기자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뜻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건강하게 바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