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을 가린다. 내가 낯을 가리는 기준은 부끄러움보다 내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 같다. 내편인 경우에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편안한 반면, 그렇지 않고 내편이 아닌 것 같은 경우에는 긴장한다. 경직되며,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 군대 제대한 지 20년이 되어가는데도, 다. 나. 까다.
나는 적어도 저자보다는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나는 업무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한번이라도 해본 일에 대해서는 기억도 잘하고, 수행하는 데에 성과를 낸다. 또한 발전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한번도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정말 곤욕이다. 전혀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지 않으니 맨날 멘붕이다. 요즘 회사에서 이러한 일들을 계속 진행하다 보니, 맨날 깨질 수밖에…
나도 안타깝다. 왜 그런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그럴까?
결론은, 어릴 적 내가 다양한 자극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 특히 주양육자인 어머니는 안정적인 사람이다. 좋게 표현하면 안정적이지만, 다른 면으로는 도전과 시도가 없는 분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그렇게 따라 하게 될 수밖에. 나는 안정적인 것이 정말 좋은 것인 줄만 알았다. 인생을 이만큼 살기 전에는…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알고서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별명은 ‘공무원’이다. 공무원을 비하할 생각은 아니다.
공무원처럼 생각하고, 공무원처럼 일한다고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정리정돈을 잘하고, 과정과 절차를 잘 기억하고 준수하며, 매뉴얼을 잘 만들고 적용시키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그런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좋지만은 않은 것이, 내가 그렇게 한 번이라도 해본,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상황이 발생하고, 그 상황 중에 내가 해결할 일과 상부에 보고할 일을 판단하는 것이 난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