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많은 생각으로 집어든 책이다. 요즘 고민도 많고, 업무에 치여서... 더군다나 다양한 업무가 정리가 되지 않아 방황하던 차에, 이렇게 시간을 보낼 바에는 조금 더 건설적인 것을 해보자!! 그것도 무작정해보자고 선택한 것이 독서.
그래서 선택도, 얇은 책! 소화하기 쉬운 소설!
그 선택은 유효했다.
하지만, 아팠다. 내용이 너무나 아팠다. 아픔으로 출퇴근길에 몸이 꼬일 정도로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 손이 갔다.
담이와 구의 지독히도 슬픈 사랑 이야기. 나도 사랑을 하고 있지만, 슬퍼서, 안타까워서, 아프기까지 한 사랑 이야기다.
"사랑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구의 증명>
19페이지. 아이 볼 같은 엉덩이. 그의 다리는 꼭 어린 자작나무 같았다. 그 몸을 만지고 싶어 조물조물 만졌다. 아름다운 이것을 어찌 불에 태우고 땅에 뭍을 수 있나. 내 손으로 그럴 수 있나.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너를 태우기도 묻기도 싫으니까 절대 나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64페이지. 너와 다른 우주에서 온전히 기억하고 있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억뿐이니까. 기억은 나의 미래. 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84페이지.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다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까운 감정. 우리 몸에도 마음에도 그것이 들러붙어 있었고 그것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4페이지. 구는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구를 먹는다. 나를 비난하고 가두고 죽여도 좋다. 그 모든 것은 내가 구를 다 먹은 후에. 이 장례를 끝낸 후에.
121페이지. 푹군. 억울한 아이. 겁 많은 소년. 냉혈한. 섹스광. 독 같은 불안. 불만으로 달궈진 인두. 호탕한 웃음. 사랑받고 싶은 욕구. 그 끝없는 욕구. 내 안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140페이지. 그리고 구는, 내가 미워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구를 보는 순간에야 이모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151페이지. 불행이 커지면 함께 있어도 외로울 것이고, 자기와 같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괴로울 것이고, 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나는 내가, 너를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안 되잖아. 앞으로도 쭉 안 될 것 같잖아.
164페이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죽어보지 않아서, 죽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홀로 남겨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안다. 지겹도록 알겠다. 차라리 내가 죽지. 내가 떠나지.
170페이지. 담아. 이 멍청아. 이젠 됐어. 넌 다 했어. 이 장례를 끝내야지. 끝내고 살아야지. 아주 오래 살아야지. 너도 여기 있고 나도 여기 있다. 네가 여기 었어야 나도 여기 있어. 밖을 봐. 네가 밖을 봐야 나도 밖을 본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살아. 담아. 이 바보야.
176페이지. 지난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면 그의 살을 손가락으로 뚝뚝 뜯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 상상을 하다가 혼자 좋아 웃곤 했다. 상상 속 애인의 살은 찹쌀떡처럼 쫄깃하고 달았다.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가능케 하는 상상.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종종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