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9 “기자님도 참 대단하네요.” “네?” “대단하다고요. 이걸 다 듣고 있어요?” 처음보다 한결 잦아진 목소리였다. “기자가 들으러 왔으면 다 들어야죠.”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그가 말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 주면 돼요?” 본인의 입장에서 억울한 이야기를 실컷 다 하고 나니, 흥분이 가라앉으면서도 화가 누그러진 모양이었다.
P40 그날 이후, 화난 사람을 취재할 때 상대를 대하는 습관이 생겼다. 먼저 내 얘기를 자세히 하지 않고, 상대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가 얘기하고 싶을 때까지,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 다 들어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의 얘기 중에 부당하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내 마음속에 화가 불끈불끈 치밀어 올라와도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는 것이다.
P40 실제로 들어보면 상대가 하고 싶은 얘기를 끝까지 다 한다고 해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P41 틱낫한 스님은 그의 저서 《화》에서 내 마음에 화가 나는 것을 집에 불이 난 것에 비유했다. 일단 불이 났다면 불을 끄는 게 먼저지, 불이 난 원인을 따지고, 불낸 사람을 잡는 게 우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 마음속 화를 다룰 때는 우는 아이를 대하듯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품에 끌어안고 함께 숨을 내쉬며 편안하게 보듬고 달래 주듯 내 마음속 화를 소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P41 상대가 화를 낸다고 나도 화를 참지 못하고 대거리를 하면, 불길은 점점 더 활활 타올라 나까지 삼켜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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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난 느낌과 나누고 싶은 주제
화가 나 있는 사람을 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더 그렇기도 합니다.
그럴때에는 ‘내가 그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화난 상황이 나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화난 사람은 누구에게나 화풀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잘 못 걸렸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화가 난다는 건,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곳이 없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누구라도 걸려라는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경험한 상황을 나누고 싶습니다.
업무로 인해 외부에서 숲과 함께하는 힐링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관객은 사전에 예약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었고, 특성상 소수(15명 내외)만이 참여하였습니다. 숲에서 진행하기도 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까지 더해지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인 건지? 참여할 수는 있는 건지?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물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해 드리면 대부분 이해하고 돌아가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에는 유독 한분이 그러한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서 화를 내시면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시는 겁니다. 그분의 취지는 “내가 더 힘들고, 살기 어려운데, 나보다 살기 좋아 보이는 저 사람들만 참여하는 게 말이 돼?”였습니다. 물론 이해할 수도 없고, 취지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시고, 이해하지도 못하셨다.
그래서 책에서처럼 이야기를 들어드렸습니다. 한참을 본인의 불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본인이 이렇게 힘든데,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요청해도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목소리는 잦아들었으며,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정치로 주제가 변경되었습니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이야기를 듣다가 프로그램 운영으로 돌아가봐야 한다고 하니 그때서야 이해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하시는데, 그 말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예시를 봐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